34살 남자인 나는, 왜 성형외과 마케터가 되었나?

34살 남자인 나는, 왜 성형외과 마케터가 되었나?

말 그대로, 나는 성형외과에서 근무하는 남자 마케터다.

아마 이런 직업을 가진 남자는 드물게다.

우리나라 기준, 성형에 관심이 많고 수술도 받는 사람은 압도적으로 여성이고(성차별적 멘트아님. 철저한 애널리틱스 분석 끝에 나온 결과)그런 여성의 마음을 잘 마케팅해서 병원으로 오게 하려면 아무래도 같은 여성인게 이해도 측면에서 남자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실장님이 옆에서 상담하는 것만 들어봐도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대 형성으로 설득하는 경우가 많더라. 사람인 구인 광고만 봐도 성형외과는 여성 우대라고 써있는 경우가 많고.

물론 나도 몇년 전, 아니 몇달 전만 해도 내가 성형외과에서 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내가 왜 여깄지?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우리 쌤들이 하하호호할때 나만 골방에 박혀서 일하고 있을 때나, 나는 도무지 공감 못할 포인트로 마케팅을 한다거나, 아니 이런게 먹혀? 라고 생각하는데 겁나 잘먹힐 때. 솔직히 이럴땐 내가 배운 마케팅 가치관의 혼란이 오곤 한다.

그래도 나름 이제 4년차가 되어가는 병원의 개업 역사상 최고의 실적을 내가 찍었었다. 이를 위해 애널리틱스 도입, 노가다 바이럴, 카페 운영, 블로그 상위 노출, 키워드 작업 등 나혼자 고군분투하며 나름 디지털적으로, 퍼포먼스적으로, 콘텐츠적으로 일을 했다. 이 바닥에서 병원 마케팅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그런 쌈마이적 마케팅이 아닌. 이런건 또 내가 남자였기 때문에 더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감보다는 논리쪽으로 일을 하려 했기 때문에.

각설하고 이 글을 왜 쓰냐하면, 지금까지 배우고 느껴온 성형외과 마케팅도 정리해보고 결혼을 앞두고 마이너하게 산 내 인생도 한번 정리해볼까 싶어서 써본다.

나름 꽤 방문자수가 나오는 네이버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지만, 거긴 이미 내 지인들에겐 많이 오픈된 공간이기 때문에 ^^ 아직은 공개하지 않은, 아무도 모르는 여기서 조용히 풀어보려한다.

사실 이 글은 혹여나 나같이 남잔데 여성 마케팅을 노리는 사람에게 노출되어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도 좋고, 노출되지않아도 나중에 내가 곰곰히 읽을테니 그것 나름대로 좋을듯. 그럼 본격적으로 풀어보자.

여기까지 흘러온 배경

서울 어느한 곳에 위치한 대학교의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제대로 된 취업 준비 하나 안했으면서 인생 배부르게 살아보겠다고 겁없이 대기업만 노리다가 결국 백수 허송세월만 몇년.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난 나름대로 전공도 살리고, 취미였던 블로그 운영을 직업으로 만들어보겠다고 관련 업종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구하게 된 직종이 바로 온라인 마케팅.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이라고 부르는 그것이다.

대행사의 추억

이런 외진 티스토리까지...찾아온 분이라면 대행사란 바닥이 굉장히 더럽고 힘들고 열악한 곳이란걸 당연히 아실듯. 나도 하다하다 더러워서 못해먹겠다하고 때려친 곳이 여럿 있다. 왜 그런 더러운 바닥을 떠났다가도 다시 연어처럼 돌아갔는지. 나도 모르겠다. 아마 배운게 그거고 나름 잘하는거고, 가슴 깊은 곳에선 좋아했기 때문이려나. 아님 구직이 언제나 잘되는 분야라 그랬던 것인지...

하여간 나도 경력은 짧으면서 퇴사를 꽤나 했었는데 그 첫 회사 퇴사부터 다시 되짚어보자. 아 물론, 처음부터 까고 말하겠지만 제대로된 대행사를 다녀본 경험 없음. 제대로된 대행사란 인하우스라는 대기업에 속한 광고회사라던지 아니면 외국계 광고회사라던지 보통 사람들은 모르지만 업계 사람들끼린 거기 다닌다고 하면 오~하는 추임새가 나오는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들이 다니는 회사를 일컫는다. 난 마이너한 대행사들. 강남이나 구로에 엄청 많은 그렇고 그런 대행사들만 다녔으니 좋~은 광고회사 다니시는 분들은 그저 하하핫 녀석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재밌게 읽고 넘어가주셨으면 좋겠다.

1. 첫번째 역삼동 대행사

대기업 입사라는 말도 안되는 꿈을 접고, 들어간 첫 회사. 나름 면접도 두번 보고 들어간 회사였다. 세상 물정 몰랐을 때라 면접 볼때 꽤나 어버버했었는데 뽑혀서 나도 어리둥절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거기 대표가 내가 무척 간절했었다는게 보였대나.

(당시 진짜 간절하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고생해서 입사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한달만에 퇴사.

입사하자마자 나한테 회사에서 진행하는 신사업 기획서를 쓰라고 하지 않나(난 생판 신입이었다. 기획서라는게 뭔지도 몰랐던. 아, 참고하라고 PPT 던져주긴 하더라)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는 팀장에게 서류를 전달할 때 결재판에 끼우지도 않았으며 자기 자리로 안돌아오고 앉아있는채로 휙 줬다고 못 배웠다는 등 말을 하지 않나...(지금 생각하면 그들도 그땐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을텐데 왜 그런 업무 스타일을 몸에 익혔을까) 내가 나온 대학교로 비아냥거리기 등등.

이런 인간적인 스트레스 포함, 그리고 한달 내내 이어진 주말 출근과 새벽 야근으로 오랜 백수생활로 풀체력이 가득했던 내가 병원 신세를 지고나서야 여기 계속 다니면 내가 죽겠구나 하고 GG쳤다.

아, 그 대행사는 거의 바이럴 대행사였다. 블로거들한테 클라이언트의 상품 빌려주고 그 블로거들이 후기 잘 썻는지, 커뮤니티에서 바이럴 이벤트 운영하고, 행사 기획하고 그런 일 했었다 ㅎㅎ

여긴 너무 짧게 근무해서 이력서, 포트폴리오에도 포함 안시킴. 일하다 심심할때 마다 전회사들 잡플래닛 찾아보는데 후기 살펴보니 여전히 똑같은듯 여긴.

2. 두번째 홍대 대행사

첫회사에서부터 만신창이가 된 나. 첫회사에서부터 만신창이가 된 나. 한달밖에 안다녔음에도 상처가 커서 재취업에 시간이 좀 걸렸다. 이번엔 진짜 꼼꼼히 살피고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업무를 해야겠다하고 면접때부터 업무 내용을 살폈다. 그렇게해서 들어간 두번째 대행사.

여긴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업무와 잘맞았다. 블로그나 페이스북 콘텐츠 만들고, 광고하고, 이벤트 운영하고. 맡았던 브랜드들도 나름 이름 들어본 곳이고 큰데였어서 내가 광고 마케팅판에 뛰어들었구나...라고 느끼게 해준 곳. 일도 많이 배웠다.

그렇지만 장점만 있을 순 없겠지. 대행사치곤(대행사치곤!!) 널럴했던만큼, 연봉이 처절하리만큼 낮았다. 일주일 한두번 야근과 제안 작업시 몰아쳤던 야근폭풍 등 업무 시간과 연봉을 계산해보면 편의점보다 못한 돈...거기에 교통비에 점심값까지 계산하면 오히려 회사 다니는게 마이너스였었다.

진짜 경력...경력 쌓겠다고 돈을 포기하고 다녔던 셈(나처럼 그러지마요. 충분히 여러분들은 돈도 챙기고 경력도 챙길 수 있습니다)

또 사람 스트레스도 꽤 있었다. 노처녀 팀장의 비아냥과 날 놀림거리로 삼는 일. 여자 직원들이랑 친하게 지낸다고 티날 정도로 날 싫어하던 노총각 남자대리(나중에 여직원들이 대표한테 저 대리가 성희롱한다고 신고해서 짤림) 등.

두번째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대표가 돈으로 했던 장난 때문.

1년 근무를 찍고, 내가 연봉 협상 하자니깐 수습기간 제외하고는 1년 안됐다고 협상 안하겠다고 대표가 도망다니는 추태를 보인거.

그리고 내 4대 보험을 가입 안하고 1년 가까이 떼어먹은거 들통난거(아니, 내 얼마안되는 월급에서 4대 보험 낸다고 떼간건 대체 뭐였을까)

이 두개가 한꺼번에 겹쳐서 대표한테 내 처우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는데. 알겠다고한 대표는 그 이후로 그때까지 한번도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내 업무 스타일로 시비를 걸었다. 그러면서 창사 이후로 한번도 아무도 낸적이 없다던 시말서를 나보고 쓰라고해서 난 양식조차 없었던 시말서를 구글로 검색해서 써서 냈었다. 그렇게 스트레스받고 연봉협상도 못하다가 결국 내발로 퇴사.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대표한테 한 돈 이야기로 미운털이 박혀서 내발로 그만두게 한거같다. 돈 더주기도 싫었겠고, 그리고 나름 회사 잘 나갔을 때라 나정돈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 나도 되집어보면 10명 남짓한 소규모 회사에서 뭐가 무섭다고 사표 대신 죄송하다고 빌면서 시말서를 썻는지 모르겠다. 걍 때려칠걸.

이렇게 약 1년 3개월 정도 다닌 홍대 대행사 생활 마무리. 이 회사는 내가 그만둔 이후 클라이언트를 하나둘씩 놓치더니 현재 폐업했다 ^^

3. 세번째 삼성동 대행사

이번에도 대행사를 갔다. 홍대에서 했던 클라이언트와 비슷한 업종의 클라이언트를 보유하고 있길래 지원했더니 바로 면접보자고해서 합격.

근데 여기도 결국 4개월만에 나왔다. 나도 이렇게 짧은 기간에 그만두면 내 이력서가 무척 지저분해진다는걸 알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려했지만, 도저히 못버티겠더라.

이유는 첫번째로, 내가 내 일을 주체적으로 하지 못한다는게 무척 컸다. 그동안 나는 브랜드를 맡으면 기획과 운영, 광고 집행까지 다 혼자서 했었다. 그러니 그 일에 대해선 내가 제일 잘 알았고, 무엇을 하든 이유가 있었고 그 결과물이 좋게 나오든 안좋게 나오든 책임을 졌고 성과도 훤하게 꾀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선 대표의 지시를 받아서 기획을 하고, 에디터한테 글을 받아서 운영을 했다. 나는 클라이언트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하면서 광고 정도 집행했고. 그런데 이렇게 업무에서 곁다리만 끼는 사람이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일 이해도가 낮아졌다. 근데 커뮤니케이션은 내가 전담하다보니 클라이언트한테도 욕먹고, 그러다보니 내부에서도 욕먹고. 우왕 ㅋ 못버티겠더라.

게다가...내 담당 클라이언트는 계약 기간 1년짜리였음에도 담당자를 몇명이나 갈아먹었던 악명높은 클라이언트였고. 생각해보면 그냥 나도 며칠 버틸 희생자로 뽑힌 것뿐이었다. 하하. 그밖에 대표의 미친듯한 마이크로매니징(PPT 자간을 대표가 지적하는 회사였다)이나 감정변화 이런 것도 못참을 정도였고. 였고. 결국 빠르게 퇴사했다.

여긴 근데 동료 직원들이 참 좋았다. 일부러 이의제기 못하게 순하고 착한 직원들만 뽑는다는 소문이 가득했다. 여기도 잡플래닛 자주 보는데 대표가 사람 뽑을때마다 가짜 리뷰 남기더라 ㅋㅋ 티 다 나는데 저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4. 네번째 구로동 대행사

저놈의 세번째 회사 때문에 이력서 쓰기가 겁나 껄쩍지근해졌다. 공격받기 딱 좋았다. 3개월을 빼놓자니 거의 반년 가까이 공백이 생겼고, 3개월을 안빼놓자니 왜 금방 그만뒀냐고 물어볼 것 같았다. 고민끝에 그냥 적었다. 왜냐면...대행사를 조금 이해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금방 그만두기 때문에, 언제나 사람이 필요한 곳이 대행사니깐. 3개월만에 그만 둔 이유만 잘 설득하고, 3개월 동안에도 이런저런 일 했다고 정리만 잘 해놓으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내 생각은 맞았다. 생각보다 금방 ^^ 구했다. 중간에 3개월 때문에 나 안뽑은 회사도 있었던 거 같은데. 그건 걔네의 불행.

여기에서는 다시 예전처럼 내가 한 브랜드를 전담해서 담당했다. 커뮤니케이션부터 운영 기획까지. 내가 원래 하던 스타일대로 일을 하니깐 일이 손에 붙더라. 대신 여기는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곳이어서 무척 힘들었다. 일주일 내내 블로그 페이스북, 바이럴이 돌아갔으니. 그래도 다행히 클라이언트는 무척이나 착한 분이었고, 웬만하면 ㅇㅋ해주시는 분이었다. 그러다보니 고마워서 나도 조금 더 잘하려고 했던거 같다. 뭐, 나름 성과도 냈고.

하지만 이 회사도 1년을 못채웠다. 여긴 ㅋㅋ 회사가 나 다니다가 망했다. 세상에 나도 내가 다니던 회사가 폐업할 줄은 몰랐다.

망한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로는 대표가 본업에 치중하기보다는 바깥에 나가 돌아다니면서부터였다. 자기딴에는 열심히 영업하러 간거겠지만, 상대측 회사에서는 귀찮은 일을 손안대고 닦을 수 있는 그런 회사로 생각했었나보다. 이 일 해주면 광고 계약 맺을게, 이거 알아봐주면 니네한테 맡길게...이런 식으로 야금야금 일시키고 견적만 알아내다가 팽 당하는 일이 여러번 반복됐다. 그러다보니 돈은 못벌고 돈만 쓰는 상황이 계속되다가 결국 끝.

또 한가지 이유는 야심차게 재도약을 한다고 데려왔던 사장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상황(남의 X만 닦아주는 상황)이 계속되면서도 정신 못차린 대표가 자긴 영업을 계속 담당할테니, 실무를 총괄할 사장을 한명 데려왔다. 그 사장분은 꽤나 경력이 화려했다. 우리나라 굴지의 광고대행사에서 남들 다 알만한 커리어를 쌓은 사람이었으니.

하지만 새로 온 사장은 진짜 광고맨이었다. 돈을 멋있는데다가 쓸 줄만 아는 사람이지 절박하게 돈을 벌어온 적은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장이 됐으면 돈을 벌어와야되는데 자기꺼 최신형 맥북을 산다, 사무실을 멋지게 꾸민다, 간판을 독특하게 칠한다, 회사소개서를 간지나게 작성한다...이런 거에만 신경쓰면서 돈을 뭉터기로 쓰는 거였다.

벌어오는 건 없는데 돈만 억수로 쓰니 사세가 급속히 기울었다. 그 와중에 내가 담당하던, 유일하게 돈을 벌어오던 브랜드의 계약이 끝나고, 비딩에 실패하면서 아예 돈나올 구석이 사라졌다. 그렇게 돈 못버는 상황이 몇달 동안 지속되는데도, 사장은 회사 브랜딩에만 ㅋㅋ 신경쓰다가 그 꼴을 더이상 못참는 대표와 대판 싸웠다. 그리고 이미 기울어진 회사는 그대로 폐업으로.

나는 한달치 월급을 더 받고, 원한다면 실업 급여 신청도 가능하다는 약속을 받으면서 구로 대행사에서 나오게 됐다. 조금 아까웠다. 조금만 더 다니면 1년 채우는 거였는데...

비록 망했지만 이 회사에서 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브랜딩도 좋고 개쩌는 영상도 좋고, 의미 넘치는 캠페인, 입소문 폭발한 콘텐츠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건 짜치더라도 실제로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이란 거였다. 하핫. 그래서 이때부터 퍼포먼스에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까지 힘들게 모았던 푼돈으로 퍼포먼스 마케팅 직무 교육도 들어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들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도움은 됐었지만...실무적으로 남은 건 없었던듯.

여러분 백만원 천만원짜리 직무 교육받는 것보다 그냥 광고비 만원써보는게 더 효과적인 교육입니다~

5. 다섯번째 구로동 대행사

다섯번째 대행사(화려하쥬?)입성. 원래는 진짜로 광고 대행사를 가보려고 했다. 키워드 광고 디스플레이 광고 네이버 구글 광고 등 퍼포먼스 위주로 하는. 근데 생각보다 내가 안뽑히더라? 물론 내가 ㅋㅋ 조금 기준을 높인 것도 있기도 하고 붙었는데도 매너가 별로여서(이제 경력자잔아) 안 간탓도 있지만 말이다.

결국 향한 곳은 또 구로동이다. 사실 구로라면 치가 떨렸지만 이 회사는 잡플래닛평도 좋았고 뭔가 열린듯한 마인드의 대표가 있어 가보기로 결정. 여기는 광고대행사여도 사람답게 살 수 있지않을까? 싶어서.

근데 아니었다 ^^ 여긴 반년하고 관뒀다. 이곳은 같이 일하는 직원들 등쌀을 못이겨서 내가 퇴사.

할일이 많아서 새벽까지 일하고 택시타고 가고, 바이럴한다고 인플루언서들한테 굽신거리는건 어떻게 할 수 있었다. 근데 못버티겠는건 직장내 인간관계였다.

떠올려보면...일을 가르쳐주기 싫다고 하는 팀장(이건 이해를 못하겠네 지금도), 왜 자기만큼 관련 분야를 모르냐고 내내 구박하는 팀장(그 사람은 그 분야로 책까지 쓴 사람이다), 회사에 충성을 강요하는 팀장(자기가 월급주나봐!) 등등. 그들 눈엔 내가 참 성에 안찼었나보다. 나도 나중엔 자포자기해서 어차피 혼나고 욕먹을 거 대충하다가 줘붜렸다. 이렇게 되니 점차 사이는 악화되고 면담하고 그러다가 결국 회사내 폭언까지 듣고 이건 조금 아닌거 같아서 그만뒀다.

허헛. 나도 이 나이 먹고 주변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킬줄 몰랐다. 그것도 이전 회사 사람들과 유쾌하게 지내고 퇴사해서도 인스타 좋아요 주고받고 모임을 갖던 내가.

이곳에서 배운건 일적인 것보다 사람이었다. 팀장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개인의 감정을 회사까지 가져와서 연결시키는 건 정말 프로답지 못하다는 거였다. 여기서 꽤 정신적 부상이 심했어서 한동안 휴식 시기를 가졌다. 내가 욕을 먹어도 되는 굉장히 무능한 사람, 적응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힘들었다. 여기를 마지막으로 나의 대행사 인생은 끝.

6. 그리고 지금...!

이정도까지 겪자 내 마인드가 변했다. 원래는 고생해도 이름 있는 브랜드와 일하면서 내 실력을 키우자라는 마인드였는데, 이젠 내 한몸 편한게 우선 순위가 됐다. 연봉이 낮아도 쉬운 일, 무조건 정시 퇴근, 가까운 출퇴근 거리 등이 우선 순위가 되었다. 그렇게 검색하고 거르고 하다보니 찾은 곳이 지금 다니는 성형외과다.

면접 때도 이제 남의 브랜드를 키우는 일은 못해먹겠고 내 브랜드 내가 키우고 싶다라고 말했더니 '브랜드' 라는 단어에 홀딱 넘어간 원장님이 이력서 볼 필요도 없다고 하면서 합격. 나중에 사정 알고보니 여기도 원래 병원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을 뽑았었는데, 영 효과가 없으니깐 병원 일은 몰라도 온라인 마케팅을 빠삭한 사람을 뽑았다고 한다. 그게 우연히 내가 됐고 ㅎㅎ

그렇게 지금 거의 한 병원에서 1년째 일하고 있다. 내가 원했던 대로 일이 쉽진 않지만...^^ 정시퇴근은 사수했고, 출퇴근 거리도 경기에서 경기로 확 줄어들어 행복해졌다.

일은 대기업 클라이언트를 상대할 때는 병원 마케팅 같은 건 우스워보이기만 했다. 근데 막상 내가 하니깐 그렇지 않더라. 어렵지만 그만큼 배운 점이 많다. 보이는 부분, 안보이는 부분 치열하게 경쟁하고. 내가 하는 만큼 실제 돈으로 연결이 되는게 보이니깐 재밌기도하고.

길이 너무 길어지는것 같아서 우선 여기까지만. 실제 병원 마케팅, 성형외과 마케팅에서 뭘 느끼고 뭘 배웠는지는 앞으로 생각날때마다 정리해보겠다. 중간 중간 대행사 인생도 풀어보고. 아마 다른 곳에서나 보는 화려한, 큰 광고대행사 사람들이 아니라 저어기 아랫층 대대행 브랜드 일 이야기 듣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글이 중구난방인점 죄송. 우선 올리고 ^^ 시간 날때마다 읽어보며 수정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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