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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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

카테고리별로 글 번호 몇번인지 맨날 헷갈림 잘 안써서 그렇지만

유서

난 평생을 언니한테 의지하며 살아왔다. 3년 먼저 태어난 언니의 뒤를 쫓아 계속 달려왔는데 대학교에 와서는 계속 방랑 중이다. 쫓아가면서 언니 덕분에 뭔가를 얻은 적은 없었다. 나와 언니를 계속 비교하면서 내 부족한 점을 알고 괴로워했다. 누가 그러랬냐고 생각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고등학생 때는 언니가 엄청 철학적이고 대단한 줄 알았다. 대학 입시를 망쳤다면서 방황하는 모습을 보고 더 그렇게 생각했다. 나라면 자기 레벨이 그 정도였다고 생각하고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지도 않아서 그냥 다녔을 텐데 PD가 되겠다면서 뭘 자꾸 찾아보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그때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이고은이랑 사사건건 부딪히고 친한 친구도 없고 엄마 아빠에게서도 계속 사춘기냐면서 짐 덩어리 취급을 받아서 딱 사라지고 싶었다. 성적도 별로고 설문지에 자살하고 싶다고 냈더니 웬 찐따 같은 애랑 같이 불려 가서 혼나고 교육받았다. 자살은 나쁜 것이야.

사람은 혼자 살아가고 언제나 외로운 것이라고 했던가. 내가 진짜 외로울 때에는 언제나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계속 언니에게 의지하려 했지만 초등학교에서도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언니는 귀찮은 동생은 떨어내고 싶어한다. 나는 어쩌면 잘못된 지지대를 고른 덩굴처럼 언니에게 기어오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니에게 거절당하면 여태까지 살아온 일 평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다. 언니도 그냥 나보다 25개월 먼저 태어나서 살아왔을 뿐이고 자기만의 인생이 있다. 언니에게 있어 내가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 행동, 감정 뭐 이런 게 영향을 끼치지도 않고 그냥 살아왔을 뿐이다. 나만 그런 거다.

지금 와서 보면 그렇다. 언니는 뭔가 철학적인 고민을 하고 사상을 가지고 그런 일과는 상관없다. 인격체를 수련하고 뭔가를 공부해서 그냥 똑똑해지고 그런 걸 원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먹고 자고 살아가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공부하고 시간을 보낸다. 부족한 게 있으면 나 자신의 결핍에서 뭔가를 찾으려 하는것이 아니라 줘야 할 사람에게 받고 그뿐이다. 모든 일을 한발 빼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면서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도 모른다. 갈등에 빠지는 것은 싫어하고 도망가면서 자기가 주체가 되는 일에는 당당하다. 분명히 언니가 가는 길을 보고 따라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길은 다른데 지도만 같아서 나는 오지 수렁에 빠져있고 언니는 도로의 편의점에서 쉬고 있는 모양이다.

언니가 가는 길은 포장도로 같다.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었겠지만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성격도 행동도 부럽다. 무슨 일이든 발 빼면 끝이고 누구와도 어려움 없이 지내고 할 말은 똑바로 하는 모습이 부럽다. 적당히 이기적인 삶이다. 본인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에게 고민이랍시고 모든 일의 중재자가 되고 싶지 않은데 되고 싶다는 귀찮은 건 다 빼고 그냥 무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같이 노는 무리도 없는 나에게 자기 잘못도 일도 아닌데 무리에서 빠지고 싶지 않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나는 갈등의 주인공이 되고 같이 노는 무리도 없어서 딱 죽고 싶다. 어쨌든 알아줬으면 하는 점은 언니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부족해서 노력을 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엄마의 관심같은 부분에서 나는 늘 뒷전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욕을 먹겠지만 언제나 느낀다. 방을 정리하면서 본 앨범은 언니 앨범만 3개, 내 앨범은 1개. 기억을 거슬러 돌아가 보면 대학교 3학년 인턴 중에도, 대학교 1~2학년 학교에 있을 때도, 고등학생 열심히 공부할 때에도, 중학생 사춘기가 심했을 때에도, 초등학생 내가 어렸을 때에도 그 전으로 전으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엄마와 언니는 나를 따돌려왔다. 나는 너무 어려서 말이 안 통하니까, 사춘기라서 가족들과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 공부한다고 시간이 없었으니까, 대학교에 인턴에 가있는다고 집에 없었으니까 하면서 늘 거리를 둬 왔다. 엄마가 밉다. 어떤 주제로 말을 하든 언니와 대화하고 싶은 거지 나와는 말하고 싶은 게 없고 불편하다. 모녀의 유대가 부럽다. 언니는 이런 것조차 귀찮고 불편하다. 가족의 믿음과 엄마의 관심이 나에게야 얻고 싶어도 얻을 수 없는 밤하늘의 별이지만 언니에게는 무거운 짐일 뿐이다.

25개월 먼저 태어났어도 취업이니 졸업이니 준비하는건 똑같은 시기에 하고 있다. 누가 하고 싶은 거 하지 말라고 했냐면서 엄마도 언니도 내 잘못으로 몰아가지만 언니가 먼저 하고 싶은걸 말하면 나는 뒷전이고,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냥 포기해도 되는 것뿐이었다. 미술이니 과학 영재 학원이니 다 다니고 싶었지만 언니가 안 가본 길을 가는 건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불안했고 언니가 하고 싶은 걸 시켜주면 뒤로는 돈이 없다느니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나는 포기하는 걸 잘 알아서 말도 안 꺼내고 맨날 포기했다. 따지자면 언니는 25개월 분량의 여유가 있고, 내가 포기한 만큼의 풍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빈곤함을 따지자면 자기 계발에 의욕 없는 언니가 나보다는 풍요로운 이유다.

엄마가 읽는다면 또 한푼한푼 따져가면서 언니는 먼저 태어났고, 집에서 학교 다니고, 학비도 싸고, 하고 싶은걸 말했고, 상황에 맞춰서 하는 거지 너만 차별하겠느냐며 얘기할 수도 있다. 아빠는 은퇴해서 이제 돈을 벌 생각도 안 하는데 나는 이제 4학년이고 대학원에 갈지 바닥을 기는 학점과 거지 같은 스펙으로 취업을 준비할지 고민할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먼저 태어났으면 먼저 하고 싶은걸 찾는 건 당연한 건데 언니가 먼저 했으니까 너는 안된다고 얘기해놓고, 덮어놓고 포기한 내가 잘못이라는 게 너무 억울하다. 공대생 치고 학비에 기숙사비까지 350만 원 정도면 초특가 수준인데 비상경계열 인문대 130만 원과 비교하면 누구든 더 쌀 수밖에 없다. 취업도 못할 전공 때문에 자격증 준비만 몇 년째면서 본인이 괴로울 얘기는 꺼내지 말라며 나에게 자격증 공부의 어려움과 자신의 불안을 호소한다. 나는 그런 걸 고민할 자격도 없는 것 같다. 가족으로 따지자면 3+1의 기분이고 살아오면서 덤 인생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가족 눈치 보고 살아도 맨날 패악질이나 부리고 산다며 나만 대역죄인이다.

내가 괴로운 이야기를 하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그냥 참으라고 말하고 끝이다. 다른 사람들이 감정의 쓰레기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감정을 내 쓰레기통에 넣어서 꽉 차있고 남는 쓰레기도 그냥 옆에 두고 다른 사람들의 짜증이나 고민도 주워서 내 쓰레기통에 넣고 계속 줍는다. 나에게 종종 짜증났던 이야기를 하는 언니는 내 얘기를 듣다가도 왜 자신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불편케 하느냐며 화내고 그 외에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화나는 일을 일정한 화약이라고 한다면 나는 아직 다 타지 않은 화약에 물을 부어놓고 창고에 던져두었다가 계속 창고에 있는 수많은 화약이 말라붙어서 언젠가 다 터져버리면 어쩌지 하면서 불안에 떨다가도 다시 타다 만 축축한 화약을 던져 놓고 창고를 닫는다. 원래 인생이라는 게 외롭고 쓸쓸한 어둠이 있는 곳이라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해야 하는 건가 싶다가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지 않은데 나만 비통하고 나만 나를 불쌍해해서 슬프다.

아빠는 솔직히 말해서 정이 없다. 불쌍하다가도 짜증나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남이라고 생각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시간이 적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고방식이 완전 딴판이다. 가족 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을 꼽자면 기억이 휘발성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삼라만상이 자기중심이고 본인 이외에는 다 상관없이 잊어버리는 아빠겠다. 아빠는 언니가 되고 싶은 인물이다. 많은 무리의 중재 자면서도 한 발 빼고, 인생이 괴롭지 않고 돈만 벌어 쓰면 그만이라 뭘 공부하려는 의지도 없고 자기를 변화하려는 노력은커녕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늘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어서 마치 에리식톤 같이 부족한 점을 채우려 내 몸까지도 씹어 삼키는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이니 가족이라도 남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엄마는 아빠를 싫어한다. 결혼하기 전부터 싫어했으면 없을 일이지만 이제 와서 싫어하면 괴로운 사람이야 본인과 그 사랑의 결정체인 나와 언니, 이 셋 뿐이겠다. 아빠는 소귀에 경읽기라서 들은 체 만 체 기억이 사라지니까 엄마는 언니에게 그렇게 아빠 욕을 해댔다. 나도 옆에서 듣고 아빠를 싫어해야 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우리에게는 잘해주니까 아빠를 좋아하라며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다. 20년간 아빠는 있어봐야 주말에 잠깐 놀아주고 그마저도 할아버지, 할머니 간병하고 자기 친구들과 놀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혼자 살아와서 행복하고 자신에게 딸린 가족들은 신경 쓸 일도 없어 행복했다. 가족이 돈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자신도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그걸 이해로, 정으로, 시간으로 쌓아와야지 20년간 일해서 돈 벌어다 줬다고 가족들에게 잘해준 거라면 그냥 스폰서와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은 주양육자를 따라가고, 따라 할 수 밖에 없다. 엄마가 아빠를 욕하지 않고 아빠와 싸우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혼자 극락정토 하는 아빠와도 남이 아닌 가족으로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가능성이 어딘가에 다른 세계에 잠자고 있을 것이다. 아빠가 은퇴한 후 지금에 와서 같이 살기 고달프다. 아빠는 무슨 말을 하든 시비조로 말을 거는 경향이 있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초등학생 시절 잠자코 있던 나를 자극해 화가 나게 만들고 왜 갑자기 시비를 거냐는 말에 계집애가 아빠한테 시비가 뭐냐면서 풍선용 손 펌프를 집어던져 마룻바닥에 흠집이 나게 하고는 회초리로 나를 흠씬 때린 적이 있다. 무슨 일이 있든지 아빠가 화가 나서 나를 때리는 메커니즘은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언니가 아빠에게 그렇게 맞는 건 거의 본 적이 없다. 문제집의 답안지를 베꼈던가 하는 일로 한번 맞았지 나는 중학교 이전까지 연례행사처럼 한 번씩 회초리로 맞았다. 그 기억이 남아있는지 몰라도 그냥 아빠와 오래 말을 하는 게 싫다. 대답이 시비로 돌아오는 것도, 아무리 열심히 말을 해도 몇 분 뒤면 처음 들었다는 식으로 어리둥절하는 점도, 어떤 주제던지 주식이니 사회니 고리짝 신문의 정치-사회, 경제 면으로 돌아가는 것도 싫다.

자기 외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현상을 자신의 주식과 연결지어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자신이 주식의 차트라도 되는 것처럼 최근 뜨는 연예인의 소속사가 상장인지 비상장인지, 새로운 코로나 치료제를 개발한 회사가 자신이 갖고 있는 주식의 회사인지, 유행하는 OTT니 카페니 뭐든 주가가 얼마니 언제 상장을 했니 하는 것 밖에 모른다.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노력은 전혀 없고 그저 지금 당장의 주식이 올라서 놀고먹고 하고 싶을 뿐이다. 현상을 현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숫자 놀음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저 불쌍할 따름이다.

아빠를 누군가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프랑스의 뒤바리 부인이 적당하다. 놀고 먹고 사치 부리기에만 관심을 가진 뒤바리 부인은 창녀 출신으로 루이 15세의 첩이다. 아빠가 창녀라는 것은 아니다. 뒤바리 부인은 정치에 관심 갖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를 하기도 했다는 의외의 일면도 있다. 아빠 또한 집안이 굴러가는 꼴은 신경 쓰지 않고 돈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관심 없이 표면적인 기부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점보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와 뒤바리 부인의 일화가 우리 가정의 상황과 들어맞는다. 프랑스 왕정에서는 높은 신분이 말을 걸기 전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왕세자비이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의 첩이라도 창녀 출신인 뒤바리 부인에게 말을 걸지 않고 뒤바리 부인은 왕세자비가 말을 걸어주기만을 기다리며 서성거리고 눈치를 봤다.

아빠는 자신이 필요한 것이 있어도 본인이 직접 하지 않고 말로도 하지 않은채 서성거리고 눈치를 본다. 아니, 따지자면 눈치를 준다. 밥 먹을 시간이 돼도 밥을 차려주지 않으면 밥 차려달라는 파렴치한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서성거리고 냉장고를 열었다 닫으며 밥을 언제 먹는담~밥 먹어야지... 하며 혼잣말을 해댄다. 무슨 일이든 먼저 달려들고 하지 않고 가족들을 따라다니면서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해주길 원한다. 왕세자비인 엄마가 바로 그 밑 계급인 언니와 나에게 말을 걸지만 뒤바리 부인인 아빠에게는 말을 걸지 않으면서 그 사이에 끼인 언니와 나만 고통받는다.

황당한 이야기를 지껄였지만 더이상의 할 말은 없다. 자기 딴에는 25년간 가족에게 헌신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가족들이 자신을 떠받들어 주지도 않고 자기 방도 없고 심지어 맨날 설거지나 시키고 밥도 제대로 안차려 주는 가정보다는 주식 얘기로 이목을 끌 수 있고 늘 즐겁게 돈 쓰러 다니는 친구들 무리가 더 좋을 것이다. 단지 그런 인생이 헛되었다는 게 아니라 내가 보기 싫고, 내 딴에는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인생이라는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미운 존재다. 내 일생을 바쳐 엄마의 눈에 들기 위해서 별 짓을 다해봤는데 결국에는 놔버렸다. 엄마 입장에서는 일생을 바쳐 낳아주고 키워줬더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생각이 들을 것이다. 어릴 때에는 엄마의 우선 순위가 아빠, 언니, 나 순서라고 생각했고 자라면서는 언니, 아빠, 나 순서라고 생각했다. 뭐 계속 바뀌었지만 어쨌든 내가 느낀 것은 내 앞에 수많은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이다. 엄마의 엄마, 엄마의 친구들, 엄마의 언니들, 사촌언니 뭐 이런 사람들이 자꾸 새치기를 하는데 엄마한테 물어보면 당연히 번호표는 내가 3번이라면서 새치기한 사람들 먼저 들여보내 준다. 그런 기분으로 계속 살아왔다. 좋은 일보다 서운한 일이 자꾸 떠올라서 엄마를 보면 기분이 안 좋아진다. 나를 인격체로 대한다고 느낄 수가 없다. 남들 얘기는 귀 기울여 주면서 나한테는 너는 이걸 더 좋아하잖아, 하고 아무런 상호작용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좋을 대로 나를 일방적으로 신경 써줬다면서 배은망덕한 자식새끼로 만들어 버린다. 엄마 때문에 난.

나도 내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고 삶은 분노와 후회의 굴레에 빠져있다. 그냥 살다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배우는 즐거움, 뭔가를 읽는 즐거움, 게임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보고 운동을 하고 바느질을 하고 외국어를 공부하고 옷, 신발, 인형이든 뭐든 무언가를 사고 빵을 굽고 요리를 하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먹고 마시고 자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내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잠시의 일탈일 뿐이다. 괴롭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내가 지적장애인인데 트루먼쇼처럼 비밀로 하고 다같이 나를 지켜본다는 상상을 자주 한다. 내가 괴로워하고 바보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낄낄대고 깔깔대는 사람들. 다들 나를 답답해하고 등쳐먹으려고 벼르고 있다.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날 가르치려고 들지 않았으면 한다. 너만 그렇게 살아. 아무도 그렇게 너를 괴롭게 만들지 않았어. 왜 사서 고통을 받니?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너만의 방법을 찾아. 너는 남들의 단점만 보고 너만 피해자고 괴로운 일을 계속 되새김질만 해. 왜 너는 죄없는 우리에게 화를 내. 왜 맨날 삐져? 왜 맨날 화내? 너는 이상해. 다 나만 잘못되어서 그냥 딱 죽고 싶다.

유서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그냥 쓴 수필이고 화가 많이 나서 쓴 글이라 두서도 없고 그냥 가족들이 읽고 괴로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언젠간 자살하게 된다면 이 유서를 진짜 쓸지도 모르겠지만 상담받고 있으니까 뭐가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글의 컨셉이 내가 유서를 쓰고 자살한 뒤 가족들이 읽었을 때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는 그런 의미인데 못된것같기도 하고 어쨋든 진짜 내 얘기기도 하고 열심히 써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아무도 안보는 블로그지만........초4때부터 종종 죽고싶을때가 있음 근데 엄마한테 말하면 관심 별로 못받아서 막 패악질부리거나 몸이 이유없이 아픈걸로 온다는 거를 상담 선생님이 얘기해준...지금도 여기저기 아퍼

자살방지 뭐 이런거에 신고하지마세용 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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