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소개

블로그 소개

이름: 김동현(金桐賢)

나이: 96(96살아님;)

성별: 남성

필명: Desperado

직업: 자영업(공수)

게임: 던파, 롤, 스팀겜(토탈워)

생활패턴: 안나감

Love 블로그는 개인 블로그로, 재작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티스토리로 이사했습니다.

주인장은 어린 나이부터 위키를 시작하고(자랑은아님;) 20대 나이에 병을 앓으면서 꽤 긴 시간을 글쓰기에 몰두했습니다.

글에 대해 심도가 높아지면서 더 이상 위키를 남들과 같이 하기에는 생각하는 사고가 너무 달랐고

개인 블로그에 집중하게 되면서 커뮤니티를 일절 끊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인터넷방송밖에 안 봅니다.

다음 내용은 그냥 주인장이 뭐하는 인간인지 궁금한 사람만 보세요. 저도 시간이 많아서 쓰는 건 아닙니다.

1996년 12월 출생해서 고향은 전주땅에서 태어났습니다. 유치원 다니면서 기억나는 것은 급식이 짜장밥이 나왔는데 그걸 다 처먹냐고 돼지라 놀리는 아이들만 생각났습니다. 사실 밥을 많이 먹는 걸 왜 돼지라 놀리는 것은 모르겠으나 돼지라 느낄 정도로 살이 많이 쪘다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IMF 외환위기 전에는 집도 잘 살아서 마당도 있는 흔히 말한 부잣집이었으나.. 뭐 그때는 못 산 사람들이 신기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잘 살았다 하니 넘어가면, IMF가 1997년 후반기에 터지게 되면서 우리 집안도 급격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제가 자영업(공수)을 하는 만큼 우리 집안도 가구나 인테리어 전문으로 일하는 고급 가게였습니다.

성격 있던 아버지도 고꾸라지게 되면서 현실에 주체 못하고 가족들에게 폭력을 일으키는 게 불화의 씨앗이었습니다. 매일 저녁을 누구랑 마시는 건지도 모르며 절일 정도로 술을 마시고 자는 가족들을 모두 깨워 흉기를 휘두르거나 때리는 건 기본이었죠. 지금 시대라면 연행할 정도로 심각한 일이었고, 당시에도 심각함을 아는 경찰들은 매번 서에 끌고 가도 소용이 없는 매한가지였습니다.

가족들에게 매일 저녁 이유 없이 맞는다는 공포와, 어두운 밤에 잘 수가 없는 스트레스는 인간이 견디기에는 너무 힘든 스트레스였습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어머니도 질려버릴 정도였으니, 매일 떨면서 이불 속에 있던 아들은 가족들에게 함부로 휘두르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원한까지 생기기도 합니다. 자기가 고통스러운 건 둘째치고 같이 울고 웃는 가족을 아버지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면서 때리는 모습을 십 년 이상 동안 보아야 했으니 정신적인 타격이 안 가는 게 신기한 거였죠.

중학생이 되던 차에 어느 정도 이제 청소년의 모습이 갖추어지니 아버지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들어가기 이전까진 아버지 행각이 너무 심해서 별거하기도 했었는데, 가정 형편도 있고 어머니도 남편이 있는 게 좋다 보니 가족들에게 함부로 해서 미안했고, 다시 해보고 싶다는 아버지랑 합쳐지기도 했습니다. 그 시기가 중학교 들어가는 시기였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중학생이 될 시점에는 아버지도 확실히 변하고자 노력했던 것이 늦게 생각 나고,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늘어가기 시작했으며 마시더라도 곱게 자고, 어떤 날에는 외식으로 해산물을 사주는 등 좋았던 기억도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주인장 김씨는 두 번째 시련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 실력 게임을 거치면서 롤(리그오브레전드, leaugeoflgends)이 한국에 공급되는데, 나름 빠르게 접하게 된 저는 오랫동안 하게 되면서 결국 1시즌(1년) 안에 2200점, 다이아1이라는 높은 티어에 도착하게 됩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초창기 때 다이아1 수준이면 프로들과 같은 레벨이었고 유명한 프로게이머들도 다이아1은 인정했습니다. 순위도 500위 안팎에 듭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대에는 다이아1 다음이 챌린저였고, 마스터, 그마라는 단계 레벨이 없었으며 그냥 다이아1에서 잘하는 놈이 챌린저(최고티어)가 됩니다. 그러니 다이아1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티어였죠.

맘만 먹으면 다이아1을 바로 따고 챌린저도 노려볼 수 있는 자격증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저는 프로게이머의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으나, 처음에는 게임으로 돈을 벌기 위해 부정한 방법으로 벌기 시작합니다. 지금이야 확실한 불법이지만 그때는 잘하는 사람이면 다 했었어요. 아마 안 했던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그러다 TV에서 LCK가 처음으로 열리고 1세대 롤 프로게이머들이 대거 멋있게 등장하자 그 TV를 보면서 자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꿈을 갖게 됩니다. 바로 위에 있는 단계만 가면 그들과 같은 점수대이니 욕심이 안 날 수가 없었겠죠.

부정 행위로 벌고 자시고, 모든 걸 걸고 프로게이머가 되기로 마음 먹은 때가 이제 중학교 2학년. 열심히 노력해서 중학교 3학년 차에 한창 게임 물이 오를 때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급한 판단과 앳된 투기는 아버지의 영향을 꽤 받았는데, 우리 아버지는 어렸을 때 그렇게 못 살게 굴어놓고 중고등학생이 되니 한 번을 제대로 미안하다 푼 적이 없었으며, 아들한테 하는 말은 언제나 공부해라, 크게 되기 위해서는 운동도 하고, 무엇이든지 열심히, 특히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바라는 게 정말 많았습니다.

제3자가 보기에는 정말 아버지가 당연한 말을 했고 행동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렸을 때 당한 억울함과 분통, 원한을 중학교 2~3학년이 아무런 사과와 책임도 없이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었습니다. 나이에 비해 아버지는 아들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았고, 하는 행동도 책임이 없었으며, 막무가내였습니다.

불화가 제대로 일어난 아버지는 더 이상 설득과 폭력이 안 통하자 그냥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다시는 아버지와 결합을 한 적은 없었고, 정말 내 아버지만큼 책임감이 없고 쾌락만을 즐기는 사람이 존재할까 의심될 정도로 미웠습니다.

지금이야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정상적인 직업으로 생활을 하니 여유롭게 산다지만(나이도 다 찼고) 당시 중학교 3학년~고등학교 1학년인 때는 아버지는 난데없이 나가버렸고, 생활비 지원도 일절두절. 자식은 프로게이머한다고 집에서 하루종일 게임만 하고 있고, 어머니는 돈을 벌어야했고, 하나밖에 없는 누나는 남동생이 정신차릴 때까지 뼈빠지게 뛰어다니면서 생활비 거의 전액의 절반을 지원하게 됩니다.

TV에 나오는 프로게이머들은 모두 운이 좋은 것 같지만, 전부 자금과 연이 통해서 올라간 자리입니다. 단순히 실력으로는 절대로 프로게이머가 될 수 없었습니다. 실력만을 추구해서 실력만이 이상인 마인드로는 절대 할 수가 없었죠. 그렇게 나이 20대 초반까지 프로게이머를 도전하다가 결국 세 번째 시련을 맞이하게 됩니다.

프로게이머만 된다면 모든 노력이 보상되어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꿈은 둘째치고 주인장은 정신병질환 중 가장 심각한 질환인 조현병에 걸리게 됩니다. 조현병은 유전적인 가족력이 제일 크며 두 번째는 고립된 환경으로 일어납니다. 조현병의 가장 큰 특징은 망상, 불신, 의심, 환각 증세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며 심각해지면 모든 사회생활이 두절됩니다. 본인은 조현병 환자로서 치료되기 위해 모든 노력과 연구를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칭할 수 있으며 아마 저보다 높은 사람은 전담 의사였던 권XX 원장님으로 정신계열에 유명하신 분 말곤 없을 겁니다.

20대 초에 조현병 증세로 병원에 들어갔으니, 병원비는 또 누가 냅니까? 나라에서 지원받으려면 정식적으로 정신질환자로 등록해야 한다는데, 가족들은 이런 정신병 따위에 김동현이 질 리가 없다 생각을 하고 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낙인이 찍히는 것과 마찬가지고 일평생에 정신질환자란 것이 따라오는데 리스크가 너무 컸었죠.

자신이 조현병에 걸렸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인 저는 병원에 강제이송되면서 상당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은 편하게 살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정신병원에는 수많은 고함과 신음 소리가 들려오며 생각함에 있어서 수많은 정신적 괴리가 뇌속에서 찢겨나갑니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옥입니다.

1년을 국립병원에서 진찰받다가, 퇴원하게 되었고. 애초에 치료 목적인지도 알 수가 없는 무능한 병원이라 다른 병원을 찾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그 병원에서 1년 진찰을 받게 되었고, 담당 원장님이 네 불치병 1달 안에 고쳐주겠다라는 패기를 듣고선 같이 마음이 불타올라 매일 새벽 일어나 체조를 했습니다.

약속된 한 달 남짓이 지난 뒤에 원장님은 약속대로 퇴원을 허가했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면 환자가 낫는데에 있어서 약이나 치료는 의미 없으며 강한 마음가짐과 올바른 사고, 올바른 생활패턴이 중요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물론 인생이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2년이란 시간을 치료받았지만 결국에는 다 낫지 못해 증상은 여전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면서, 이 정신병이 나을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고 싶다는 마음가짐으로 버티다가. 자살시도도 몇 백번을 시도하고, 몇 천번을 생각하다가. 이제는 약도 먹지 않고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던 찰나 갑작스레 증상이 완화되기 시작했고 지금에서야 병이 거의 나은 수준으로 치료되었습니다. 사실 의사한테 물어봐도 뭔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그때 퇴원을 허가했던 원장님이 병이 낫지도 않는 환자를 내보낼 사람은 절대 아니란 거였습니다.

인생에서 죽다 살아난 것 같은 경험을 하면서, 더 이상 프로게이머 같은 목표는 접고. 더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나가기로 결심합니다. 모든 원한과, 고통과, 복수와, 악념을 뒤로하고, 무엇이 되었든 신을 믿으며,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하고 목숨을 걸 만큼의 결사가 있을 것을 원대하며, 기다립니다. 무엇이 나를 기다리길래 한 가지도 견디기 힘든 세 가지의 시련을 통해 단련하게 했는지.. 결국 필자는 프로게이머가 아니라 숭고한 무엇을 꿈꾸었는지만이 궁금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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