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흘리는 소설

땀흘리는 소설

저자: 김혜진, 김세희, 김애란, 서유미, 구병모, 김재영, 윤고은, 장강명

출판: 창비교육(2019)

소나무언덕4호 작은 도서관 덕에 읽었습니다

<책소개>

『땀 흘리는 소설』은 현직 교사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제자들을 걱정하며, 앞으로의 사회생활에 지표가 되어 줄 8편의 소설을 가려 엮은 책이다. 책에는 아련한 눈으로 동시대 청년들의 애환을 섬세하게 그려 내고 있는 작가 8명(김혜진, 김세희, 김애란, 서유미, 구병모, 김재영, 윤고은, 장강명)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이 8편의 소설 속에는 인터넷 방송BJ, 공무원 시험 준비생, 카드사 콜센터 직원, 외국인 이주 노동자, 알바생 등 N포 세상에 '을'로 내던져진 청춘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땀 흘리는 소설』은 현재 노동 현장에 있는 사회 초년생과 앞으로 일을 하게 될 예비 사회인(학생)에게 일하며 먹고살아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출처:인터넷 교보문고]

<저자소개>

김혜진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단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그녀는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화려한 올가미에 얽혀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을 이야기한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2007년 제5회 문학수첩작가상을, 서른 살을 지나서도 여전히 철들지 못하고 무엇 하나 정해진 바 없이 방황해야만 하는 서른셋 여자의 일상을 그린 『쿨하게 한걸음』으로 2007년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집 『당분간 인간』,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 『끝의 시작』, 『틈』, 『홀딩, 턴』을 썼다.

윤고은

소설가. 라디오 디제이. 여행자. 지하철 승객. 매일 5분 자전거 라이더. 길에 떨어진 머리끈을 발견하면 꼭 사진으로 남겨야 하는 사람. 책이 산책의 줄임말이라고 믿는 사람. 라디오 [윤고은의 EBS 북카페]를 진행하고 있다.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1인용 식탁』 『알로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 『밤의 여행자들』 『해적판을 타고』가 있다. 한겨레문학상, 이효석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구병모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문장력과 매끄러운 전개, 흡인력 있는 줄거리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기존 청소년소설의 틀을 뒤흔드는, 현실로부터의 과감한 탈주를 선보이는 작품이었다. 청소년 소설=성장소설 이라는 도식을 흔들며, 빼어난 서사적 역량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적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받았다. 작품을 지배하는 섬뜩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도 이야기가 무겁게 얼어붙지 않도록 탄력을 불어넣는 작가의 촘촘한 문장 역시 청소년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집에서 뛰쳐나온 소년이 우연히 몸을 피한 빵집에서 겪게 되는 온갖 사건들은 판타지인 동시에 절망적인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며, 일반문학과 장르소설의 묘미를 적확한 비율로 반죽한 이 작품만의 특별한 미감은 색다른 이야기에 목말랐던 독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했다. 또한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마법사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비틀린 욕망은 무시무시하고,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헨젤과 그레텔』 같은 '잔혹동화'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이들의 문법을 절묘하게 전복시킨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어 화제가 되었다.

구병모 작가는 한 인터넷 웹진에서 '곤충도감' 이라는 작품을 연재했다. 이름을 가리고 봐도 구병모 작가의 작품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용서에 대한 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2015년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오늘의작가상과 황순원신진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단 하나의 문장』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파과』, 『아가미』, 『한 스푼의 시간』이 있다.

장광명

연세대 공대 졸업 뒤 건설회사를 다니다 그만두고 동아일보에 입사해 11년 동안 사회부, 정치부, 산업부 기자로 일했다. 기자로 일하면서 이달의기자상, 관훈언론상, 씨티대한민국언론인상 대상 등을 받았다. 장편소설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장편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 장편소설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과 오늘의작가상,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 단편 「알바생 자르기」로 젊은작가상, 단편 「현수동 빵집 삼국지」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그 외 장편소설 『한국이 싫어서』, 『우리의 소원은 전쟁』, 『호모도미난스』, 소설집 『뤼미에르 피플』, 『산 자들』,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 『팔과 다리의 가격』, SF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 『책, 이게 뭐라고』를 썼다. 앤솔러지 『놀이터는 24시』에 「일은 놀이처럼, 놀이는……」을 수록했다.

김혜진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치킨 런」이 당선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2013년 장편 소설 「중앙역」으로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을, 2018년 장편 소설 「딸에 대하여」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장편 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중편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 등이 있다.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김애란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충남 서산에서 자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2년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같은 작품을 2003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이 있다. 이 책에서 고재귀의 사진을 찍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창작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한무숙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세희

1987년 목포 출생. 서울시립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15년 [세계의 문학]에 『얕은 잠』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소설집 『가만한 나날』이 있다. 제9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이 있다.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삶을 결코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요즘은 엄마로서 아이를 돌보고, 작가로서 글을 돌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재영

1967년 경기도 여주 출생.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전태일문학상에 입상했고, 2000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코끼리』 『폭식』 등이 있다. 소설 「코끼리」는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영문 번역되어 해외에 알려졌으며,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창비, 비상, 천재교육)에도 수록되었다. 대산창작지원금, 문예진흥기금에 선정되었으며, 중앙대, 경기대, 숭의여대, 충북대, 한성대 등에서 문학을 강의했다. 현재 문화예술연구소 '바라'의 대표이며 제주 외국인평화공동체 이사를 맡고 있다.[출처: yes24]

<목차>

머리말 4

어비 · 김혜진 12

가만한 나날 · 김세희 42

기도 · 김애란 74

저건 사람도 아니다 · 서유미 106

어디까지를 묻다 · 구병모 136

코끼리 · 김재영 166

P · 윤고은 202

알바생 자르기 · 장강명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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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비를 못마땅해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뭐랄까. 어비에겐 늘 사람들을 밀어내는 기운 같은 게 있었다. 여기까지라고 금을 그어 놓고 내내 그 경계를 지키는 데 필사적인 사람 같았다. 그게 뭐든 일단 가까이 오려고 하면 고개부터 저었다. 그런 반응이 사람들을 물러서게 하고 위축시키고 괜한 짓을 했다고 자책하게 만든다는 걸 생각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어비는 내내 척제 책장을 올려다보거나 바닥을 보며 걸었다. 항상 이어폰을 꽂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건넨 인사와 질문을 그냥 지나친 게 여러 번이었다. 식사 시간엔 빠르게 밥을 먹고 나가 버리거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다음 뒤늦게 들어와 밥을 먹었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수다를 떠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어비는 있었나 싶으면 어느새 가고 없는 사람이었다.

어디갔지 하고 찾으면 늘 작업장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p.38

아무리 기다려도 방송은 다시 켜지지 않았다. 나는 난간에 몸을 기대고 시커먼 강을 오래도록 노려보았다. 이 모든 게 어비 때문이고 어비 탓이고 그런 생각이 들면 당장 달려가 실컷 화풀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서늘하고 축축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또 계속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서 있기만 했다. 계속 앞으로 가는 것도, 되돌아 나가는 것도 아득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좀 덜 걸을 수 있을까. 금방 다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어차피 그런 건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걷기 시작했다.

p.51

게다가 내가 지금껏 뭔가를 사고 찾을 떄마다 검색해 참고했던 블로그 후기들도 죄다 업체를 통해 작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포털의 로직을 알면 알수록, 일반인이 운영하는 블로그 글이 상위에 노출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맛집이나 병원처럼 사람들이 자주 검색하고 참조하기 때문에 시장이 되는 것인데, 시장이 되면 사람들이 원하는 진짜 정보는 닿지 않는 곳으로 밀려난다.

이것이 경제구나.

나는 세상의 이치를 목도한 사람처럼 약간의 경이로움과 체념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p.94

'수도(首都)가 이래도 되나?'

수도니까 그런 것도 같다. 잿빛 나무들은 미동도 않는다. 신림동 고시 인구가 2만 명 정도 된다던데. 여기를 지나간 이들 모두가 일제히 숨죽이며 살았겠구나. 2만 명의 침묵, 2만 명의 뒤꿈치, 2만명의 불면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게 어떤 공간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몇 신 년간 반복되었다는 것이. 우리가 오른 산이 관악산인지는 모르겠다. 어디서부터가 신림이고, 어디까지가 9동 혹은 12동인지 모르는 것처럼. 막연히 신림에 있는 산이니까 관악산이겠거니 한다. 나는 어느 양옥 고시원의 옥상을 눈여겨본다. 바람에 나풀대는 빨래 몇 장. 거꾸로 세워진 붉은 '다라이'. 녹슨 역기와 물탱크. 그러다 어느 옥상에선가 언뜻 왔다 갔다 하는 물체를 발견한다.

p.143

저희들 이모 고모 세대만 해도 학교 다닐 때 막 그 뭐야, 학교에서 도시락 검사하면서 쌀밥인지 보리나 콩 혼식인지 검사했다는 시절인데 어김없이 필통 검사도 했다데요. 필통에서 일제나 미제 샤프 나오면 이름 적고 혼내고. 나중에 다 돌려줄 거면서 괜히 압수하는 시늉에다가. 저희 세대한테는 그런 게 통하지도 않을뿐더러, 자라오는 내내 주입받은 게 뭔데요.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급병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그거잖아요. 적응하고 변신하는 데 실패하면 그대로 도태된다. 실수는 죽음이고, 사회는 토너먼트를 표방하면서 패자부활전으로 시청률을 올리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무대가 아니며, 한번 넘어진 순간 네가 앉을 의자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잖아요?시간을 포섭하지 못하는 자는 시간이 그를 포식해 버리죠.

그러고 보니 28년 살아오면서 배운 거라곤 국영수가 아니라 진화론뿐인 것 같네요. 목 긴 기린이 나뭇잎 따 먹고 살아남는다는 거. 그리고 이 교실에 있는 너희들 40명 가운데 적어도 35명은 목짧은 기린이라는 거. 그때는 애들이 투덜거리기를, 목이 길어 봤자 부러지거나 잘리기밖에 더하겠냐고. 하지만 졸업하고 밀가루투성이의 찢어진 교복과 함께 교문 바깥으로 내던져진 뒤 각자의 자리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부러지거나 잘리는 쪽은 짧은 기린이라는 거. 그때는 애들이 투덜거리기를, 목이 길어 봤자 부러지거나 잘리기밖에 더하겠냐고. 하지만 졸업하고 밀가루투성이의 찢어진 교복과 함께 교문 바깥으로 내던져진 뒤 각자의 자리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부러지거나 잘리는 쪽은 짧은 목이라는 걸.

p.160

결국 그 고객님은 탈회를 끝내 못 하고 전화 연결이 끊어진 것 같아요. 탕시빗ㄹ에서 호흡을 좀 진정하고 세수를 하는데 왠지 아이러니하더라고요. 악을 쓰고 욕을 하며 우리를 짓밟은 이들은 목적을 신속하게 달성했는데 정작 괜찮냐, 고 한마디라도 물어보고 돌아봐 준 이는 그러지 못했을니까요. 그런 분들을 더 잘 모시고 챙겨 드렸어야 하는데 우리는 인간인데 어째서 오랜 지배와 구속에 길들여진 짐승처럼 어느새 나를 때리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반응하고 꼬리를 흔들거나 내리게 되;었을까. 그러니 너희들은 더더욱 짐승 취급을 당해도 된다며 누군가들은 의기양양하게 돌을 던질 텐데.

p.162

나는 어디까지 가려고 이 차를 탄 걸까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따 내리기 전에 그 대사 한 번만 더 들려주세요. 대체 어디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야. 그다음 회부터 완결까지 듬성듬성 건너뛰었고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데, 주인공은 잃어버린 신수를 어떻게 되찾았나요? 몿 찾았어요? 끝까지 신수 없이 경기를 해냈어요? 그 시대 만화치고 혁명적인 발상이긴 한데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더 만화적이네요. 신수의 힘도 빌맂 않고 최소한 어느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행하거나 도약했다는 거잖아요? 단지 주인공이 뒤늦게 정신 차리고 그전까지 직진 일변도이던 길의 방향을 꺾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런데 어디까지 가야 그 길이 내가 가려던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사람은 알게 되는거죠? 어디까지 갔을 때 사람은 자신의 심연에서 가장 단순하며 온전한 것 하나를 발견하고 비로소 되돌아올 여지를 찾을 수 있거나, 아니면 되돌아올 길이 없어 그대로 다리 아래로 몸을 던져 버리게 되는 걸까요?

p.226

장은 텔레비전 소음을 줄이고,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걸 곳은 이제 한 군데 뿐이었다. 아내와 아이는 뉴저지에 있었다. 떨어져 있는 시간과 거리가 길수록 주고받는 말은 점점 짧아졌다. 할 말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생략과 선별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사건이 아니고는 걸러 내는 습관이 자라났던 것이다. 걸러 내고 걸러 내고 걸러 내고 생략하고 생략하고 생략하고 그 와중에 남은 말들만 태평양을 건너갔다.

'목젖 아래 뭐가 사나 봐. 뭔가가 계속 기어 나오네. 이를테면 해파리 같은 거?'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뭐라고 할까. 가장 최근에 태평양을 건너간 말은 보너스를 입금했다는 말이었고, 그 전에 나눈 말은 환율 때문에 득을 보았다는 말이었다. 태평양을 건너는 말은 이를테면 그 정도의 권위가 있어야 했다. 뉴저지의 청중들에게 그는 캡슐이니 해파리니 하는 사건을 들려줄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민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긴급한 용건이 있는 사람처럼 전화기를 집었던 시작에 비해 끝은 과도한 고민으로 흐지부지 되고 있었다. 그가 어렵게 전화기를 들었을 때 긴장감은 최고조가 되었지만, 바다 건너편에서 아들 목소리가 들리자 그만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그는 벌어진 일을 잠시 잊고 뉴저지 어느 주택가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평온하고 바쁜, 일상적 소음. 전화를 끊고 나어샤 장은 현재를 기억했다.

p.264

걔 불쌍하다고, 잘 봐주려고 했었잖아. 가난하고 머리가 나빠 보이니까 착하고 약한 피해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얕잡아 봤던 거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 걔도 알바를 열몇 개나 했다며. 그 바닥에서 어떻게 싸우고 버텨야 하는지, 걔도 나름대로 경륜이 있고 요령이 있는 거지. 어떻게 보면 그런 바닥에서는 우리가 더 약자야. 자기나 나나, 월급 떼먹는 주유소 사장님이랑 멱살잡이 해 본 적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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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에 대해서 다시한 번 생각하게 해준 책. 글쎄 너무 암울한 모습들만 담아놔서 같이 우울해지긴 하는데...돌마리 북콘서트에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과제 책이어서 읽게 됨.

책 제목 정말 잘 지은 것 같다는 생각.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도 느껴지고... 이렇게 잘 엮어낸 것도 멋지구나 생각은 했다만, 이걸 아이들한테 읽히면 그야말로 "청소년 무기력"증이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긴다.

읽는 동안은 무진장 생각도 많아지고, 이래저래 마음이 쓰였는데, 뭔가 기록하려하니 또 생각의 게으름증이 다가오는 것이 모든 생각들을 저편으로 밀어넣는구나...언젠가는 더 쓸 수 있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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