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양극화 필연적인가

자본주의 양극화 필연적인가

오늘 친구와 자본주의와 양극화에 대한 이야기를하면서 토론을 하게 된 내용을 블로그에 적어보려고 합니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양극화는 이제 필연적이며 막을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체념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자본주의 안에서도 양극화는 필연적이지 않으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인 선을 위해서 우리는 양극화를 막기위한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극화란?

일단 먼저 양극화란 무엇이고 양극화가 왜 나쁜지에 대해서 먼저 정의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물론 양극화도 여러종류가 있겠지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에 결국은 자본의 양극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본의 양극화란 결국 가진사람은 더 많이 가지게 되고 못가진 사람은 더더욱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이야기합니다.

모두가 똑같이 공평하게 잘살면 좋겠지만 그것은 이상적인 모습일 뿐이고 실질적으로 인간의 사회에서 운과 재능, 노력, 능력 따라서 어느정도의 재산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돈은 누구나 더 갖고싶어합니다. 이것은 가난한사람이 부족하다고해서가 아니라 이미 가진사람도 더 가지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미 돈을 가진 사람은 이를 이용한 정보력, 자본력, 힘의 격차에있어서 월등하게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돈이 돈을 벌게 됩니다.

양극화가 왜 나쁜가?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100명의 집단이라고 가정하고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돈이라는 재화를 생명유지에 있어서 필수적인 물이라고 생각을 해봅시다.

만약에 해당 집단에 하루에 100L의 물이 있는데 힘이 센 사람 한명이 이중에 50L를 가지고, 1명을 포함한 10명이 35L의 물을 가지게 됩니다. 나머지 90명이서 15L의 물을 가지고서 산다고 생각해봅시다. 한 사람은 하루 종일 마셔도 다 못마실 물을 가지고있고, 나머지 10명도 너무 많습니다. 반면에 90명은 15L의 물을 차지하기 위해서 아전투구를 하고 있는 배분 이게 실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 양극화는 매년 나빠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양극화는 우리 몸의 DNA에 이미 생존에 위협적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무리를 짓는 생물들은 집단 전체의 생존을 위해서 한 개체가 자원을 독차지하면 전체 무리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문명사를 본다고 하더라도 결국 제국의 몰락에는 귀족에 의한 토지자본의 양극화가 있었고, 이에 따른 흉악범죄의 기승, 공동체에 대한 믿음 붕괴, 시민계급의 붕괴가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은 소수의 욕심을 통제하지 못해서 로마제국이 몰락했던 사실도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태동과 양극화

자본주의의 태동때부터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빅토리안 에이지 즉 1870년대의 영국 자본주의 사회로 한번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막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이 나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입니다. 한창 찰스디킨즈가 활동하던 시대이기도합니다.

영국의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자본주의 공장이 돌아가던 런던에서는 스모그현상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하루에 14시간 주 6일동안 일하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동노동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당시에 사람들의 평균연령이 몇이었습니까?

그당시 도시근로자의 평균수명이 18세였습니다. 가난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어린시절부터 노동착취를 당하면서 질병과 사고로 죽게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초창기 모습에서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모습이 이러한 끔찍한 사회라고 한다면 이것이 맞는 사회인지에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이에 의한 반작용으로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고 공산주의가 대두하게 되었습니다. 엉뚱하게 산업화된 국가인 영국이나 독일 미국이 아닌 여전히 소작농 국가였던 러시아에서 나오게 된것이 아이러니하지만 세계대공황을 거치면서 결국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의 개념을 어느정도 수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덕분에 이를 흡수해서 케인즈주의 즉 수정자본주의가 나오게 되면서 오히려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맞게됩니다.

양극화가 줄어들었던 골디락스의 시대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이야기한다면 1950년부터 1973년까지의 23년동안을 세계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지속적이고 수익성이 있는 경제 성장의 시기라고 일컬으고 있습니다. 금색 곰들이 꿀을빨던 시기가 있다해서 골디락스 시대라고도 부릅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수정자본주의 즉 케인즈적 복지국민국가라는 이름 하에서 어느정도 정부의 자본에대한 통제하에서 금융활동과 금리를 조절하고 산업투자를 조정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복지에 대한 지출을 확대하여서 양극화를 줄여나갔습니다. 가장 노동자들의 임금이 빠르게 성장했던 시기도 바로 이시기입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와 함께 대중문화가 만들어진 시기도 바로 이때입니다. 대중들의 삶의 질은 높아졌고 양극화도 줄어들었습니다. 금융시장은 단순했지만 투명했고 확실했습니다. 물론 이떄도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다 잘살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도 사실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던 것도 정부주도하에 기업과 자본을 운영한 덕분이었습니다. 사회복지에대한 지출은 못했지만 그나마 성장을 이루었던것도 이떄입니다. 당시 미국은 1인당 실질 GDP가 2.45%씩, 서유럽은 4%씩, 심지어 소련도 3.36% 일본은 무려 8%씩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오일쇼크가 터지기 전까지는요.

오일쇼크와 함께온 신자유주의바람 양극화

저는 한평생 신자유주의를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저와 비슷한 세대는 자본주의는 양극화를 만들어내며 이것은 필연적이다라고 믿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전세계 경제가 충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충격에 빠졌을때 문제가 지금까지의 케인즈주의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자유방임주의로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시장에 맡겨두었으면 경제가 더 잘돌아갔을 텐데 무리한 정부의 개입이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경제를 위기에 빠뜨린 주범이라고 한 것입니다.

마가릿 대처를 포함해서 로널드 레이건같은 대통령들이 이제 정부의 자본에 대한 규제를 전부 풀고, 모두 민영화 시키기 시작합니다. 철도도 민영화, 의료보험도 민영화, 학교도 민영화 결국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게 일부 자본가들을 배불린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신자유주의의 바람은 막을 수 없는것 처럼 느껴졌고 또한 세계화라는 물결과 함께 전세계 구석구석으로 자유무역이라는 이름하에 불어닥쳤습니다. 저 또한 이게 끝나지 않는것 같아보였습니다.

대한민국에는 IMF와 함께 왔습니다. 더 쉬운 해고, 노조의 해체, 계약직과 정규직이라는 노동계급의 이원화, 파견직으로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전까지는 신자유주의야 말로 대세중의 대세였습니다.

물론 2008년 이후에도 신자유주의라는 이름하에 글로벌 다국적기업과 자본가들은 여전히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결과가 2008년에 어떻게 되었는지 보았고 심지어 초창기 자본주의의 모습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보았으면서도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애덤스미스 조차도 인간의 이기심이 자본주의의 동력이지만 그 이기심을 통제하지 않으면 인간소외와 파멸로 치닫게 됨을 그의 저서에서 우려하고 있습니다.

AI시대와 양극화

어느새 자유무역과 신자유주의라는 것도 이제는 한물간 느낌이 듭니다. 세상은 보호무역으로 돌아섰고 다시금 전세계가 케인즈시대와 같지는 않지만 정부주도의 경제계획과 자본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다가올 AI시대에서 수많은 직업들이 사라질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게 되는것을 우리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생산수단이라는 AI를 소유한 소수와 그렇지 못한 수많은 쓸모없는 사람들로 나뉘게 될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일자리를 위해서 과거의 러다이트운동처럼 AI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보호해야할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과연 우리가 부의 분배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을 해봐야 할것입니다. 개개인의 이기심을 내려놓고, 무엇이 정의로운 선택인지 최대 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과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한발 더 나아가서 단순히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AI시대에서 자본주의가 나아갈 방향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어떤 현명한 선택을 내릴 것인가가 다음 22세기를 어떤 형태로 우리가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현 인류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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